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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춈미

깜빡 잠이 들었기 때문에 새벽녘에 버스 종점에서 안산역까지 헤맸던 건에 대하여

최종 수정일: 2023년 10월 27일

글∙그림 춈미

임철민, <반월 1>, 장지에 수묵, 193.6×112.1cm, 2023.


임철민, <반월 2>, 장지에 수묵, 193.6×112.1cm, 2023.


늦은 밤 서울에서 버스 막차를 타고 귀가하던 길에 잠깐 잠이 들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집을 한참 지나 안산, 반월공단에 있는 버스회사의 종점에 도착한 뒤였다. 이 시간의 공단은 개미 지나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공허함과 소름돋는 차가움으로 가득했다. 차량과 사람의 왕래가 영영 끊겼고, 콜택시도 들어오지 않는 외딴곳에 조난 당했다. 고민 끝에 안산역에선 택시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사람들이 남긴 희미한 흔적을 쫓아 목적지를 향해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임철민, <종점>, 장지에 수묵, 140.0×70.0cm, 2023.


임철민, 희망, 60.6×72.7cm, 장지에 수묵, 2023


골목의 희미한 가로등을 옮겨 다니면서 가끔 만났던 교차로의 허황찬란함이 아니었다면 패닉에 휩싸였을 것이다. 종종 마주친 이정표를 통해 내가 어디쯤 있을지, 또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 가늠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공단 내에 있는 모든 방향의 이정표는 대부분 안산역을 가리키고 있었고, 이로 인해 나는 도시 안에서 길을 잃었었다.


임철민, <건널목 1>, 장지에 수묵, 70.0×140.0cm, 2023.


임철민, <초록불>, 장지에 수묵, 90.9×72.7cm, 2023.


끝나지 않을 어두운 길 위에서 취직 면접을 위해 공단을 찾았던 것을 떠올렸다. 대형 트럭이 수시로 건물들을 들락거리고 도로에는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들이 넘쳐났다. 비슷한 외양을 가진 건물들에서는 기계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각자의 이유로 모인 우리의 욕망이 복잡하게 얽혀 섞여 가득 차 있었으며, 무척이나 뜨거웠었다.



임철민, <물 웅덩이가 있는 골목>, 장지에 수묵, 70.0×140.0cm, 2023.


이 지역의 특성이 서로 상반된 가치의 중간에서 오고 가며 균형을 이루는 것에 있다고 짐작하면서, 어느 순간 나는 내 형태가 이 공간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명확한 목적지도 없이 그곳을 추구하면서 방법이 없기에 하염없이 헤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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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스스로가 '희미' 하다고 느끼는 위기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누군가로 터 전달되었을 수도 있고, 태생적으로 갖게 된 어쩔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흐릿한 스스로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며, 작업을 시작한 이유이다.


임철민, <인기척 1>, 장지에 수묵, 60.6×72.7cm, 2023.


내가 있는 세계는 나를 통해야만 의미가 있다. 그리고 세계가 나를 형성한다. 그렇기에 나는 세계와 나의 관계를 희미하게 그린 풍경을 통해 스스로의 모습을 어렴풋이 비춰보고 있다. 내 작업은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이자 ‘나’라는 대상을 구축하는 노력이다.


임철민, <정류장>, 장지에 수묵, 90.9×72.7cm, 2023.


우리는 모두 각자가 견뎌내고 있는 고통의 순간이 있다. 그런 것들을 누군가, 쉽게, 별거 아닌 것처럼 말하거나, 그런 것들로 인해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여기 함께 아픔을 겪는 이웃이 있고, 여기 노력하고 있는 이웃이 있다는 사실이 약소한 위로가 되길 바란다.


에디터 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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