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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래빗

충장로 198 앤의 정원

최종 수정일: 2023년 8월 24일

사진 나므

그림 래빗


이언정, <앤의 정원>, 30x25cm, 2023

상록수역 앞에는 90년도 즈음에 지어진 아파트 단지들이 많다. 햇살이 화창하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불 때면 마트에 장을 보러 충장로를 따라 걷곤 하는데, 그때 지나게 되는 이 오래된 아파트들은 서로 함께 한 시간이 길어서인지 각기 다른 단지임에도 마치 하나인 양 인상이 닮아 있다. 가까이 보이는 키 작은 동도 저 멀리 보이는 키 큰 동도 비슷한 빛깔로 톤을 맞춘 가운데, 태영 아파트와 신안 아파트 사이에 있는 샛노란 건물 벽은 단연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만 하다. 바로 알록달록한 꽃들과 새 그림이 반기는 카페 ‘앤의 정원’이다.



근데 우스운 사실은 이렇게 눈에 띄는 데도 불구하고 이곳이 카페임은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2년 전에 오픈했다니 내가 이 옆을 지나친 횟수가 적진 않았을 텐데 그럼에도 한참을 어린이집으로 생각해 왔던 것은 아마도 나의 무신경함과 이 카페의 독특한 이력 때문일 것이다. 유치원 원장님이셨던 카페 사장님이 유치원이었던 건물을 개조하여 오픈한 카페 ‘앤의 정원’은 바로 옆에 놀이터도 있어 나의 착각을 한층 더 강화했다. 그러다 얼마 전 철제 아치를 감싸며 핀 살구색 장미가 아름다워 처음으로 찬찬히 이곳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그제야 카페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입구 너머 보이는 푸른 잔디와 갖가지 꽃과 나무로 꾸며진 정원은, <비밀의 화원>처럼 오랫동안 문이 잠겨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열린 신비로운 장소로 나에게 다가왔다.



아치문 밑으로 깔린 붉은 벽돌길을 따라 들어서니 생각보다 넓은 정원에 또 한 번 놀랐다. 최근에 비가 많이 와서 더욱 푸릇푸릇한 가운데 스케치북에 잎을 그려보라고 하면 누구나 그렇게 그릴 것 같이 생긴 전형적인 것에서부터 아기 손톱처럼 작고 동그란 잎을 가진 것, 나뭇가지인지 풀인지 모르게 생긴 것, 잎에 연한 테두리가 있는 것, 유일하게 알아본 로즈마리까지 초록색 안에서도 다양한 생김의 식물들이 가득하다. 그 사이로 꽃들도 지지 않고 붉기도 하고 푸르기도 하고 화려하기도 하고 청순하기도 하며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벤치와 파라솔도 보이는 걸 보니 날이 좋으면 정원에서 티타임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정원은 카페 안에서도 볼 수 있었다. 벽을 가득히 채운 통창은 대형 프레임이 되어 카페 내부의 노란 조명과 정원의 푸름을 대비시키고, 통창 너머로 보이는 정원은 놀이터의 알록달록한 원색과 녹음이 어우러져 어느 인상파 화가의 작품이 된다.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주문한 라테와 마들렌을 먹으며 한참을 정원 구경을 하다가 카페 안을 둘러보니 테이블이며 의자며 조명 모두 소재와 디자인이 다양해서 하나하나 살펴보는 맛이 있었다.

<빨간 머리 앤> 패브릭 포스터도 걸려 있어 혹시 카페 이름이 여기서 따왔을까 잠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헬렌 켈러의 스승인 앤 설리번에서 따온 거라고 한다. 카페 사장님께서 2층에서 원예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시고 원예 심리 지도사 자격증 과정도 가르치신다는데 그 말을 들으니 설리번 선생님이 헬렌 켈러에게 펌프로 끌어올린 물에 손을 담그게 해서 물을 가르쳤다던 일화가 떠올랐다. 그때 설리번 선생님이 가르친 건 단순히 어떤 물질의 이름인 ‘물’이 아니었던 것처럼 카페 사장님도 그저 ‘꽃은 예쁘다’를 가르쳐주고 싶으신 게 아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카페 곳곳에 있는 크고 작은 화분이며 액자, 꽃의 향 하나하나가 헬렌의 ‘물’처럼 느껴졌다.



오래된 아파트 사이에 숨어 있는 비밀의 화원, ‘앤의 정원’. 도통 흙 만지는 즐거움을 모르는 나로서는 ‘앤의 정원’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다양한 식물을 접할 일이 없었을 것이기에 이곳을 인식하게 된 일이 참으로 값지다. 동네에 이런 카페가 있었다니…. 이곳에 머무는 동안 느꼈던 즐거움을 가까운 내일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하다. 집으로 돌아와 카페에서 찍은 사진 속 식물들을 검색해 보니 율마처럼 이름이 익숙한 식물도 있고 호스타, 비덴스와 같은 이름조차 생소한 식물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사진만으로 제 이름을 찾기 어려웠다. 다음에는 2층의 원예 체험 프로그램도 이용해 보면서 하나씩 이름을 알아가야겠다. 불러줄 수 있는 이름이 많아질수록 분명 그 이상의 많은 것을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에디터: 나므



이언정, <앤의 정원>, 30x25cm, 2023


자연을 담은 카페 <앤의 정원>을 작가의 감성으로 표현한 작업입니다. 작가는 이곳을 방문하였을 때 푸르른 식물들이 공간을 감싸고 있는 듯한 느낌 받았습니다. 가꾸어진 자연 속에서 향긋한 차와 함께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느끼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채널 안산에 실린 그림·글·사진 등 모든 자료는 작가와 에디터에게 저작권이 있음으로 서면 동의 없이 어떤 경우에도 사용을 금합니다.


 

‘앤의 정원’

주소: 경기 안산시 상록구 충장로 190 앤의정원

전화번호: 031-418-4242

운영시간: 10:00-22:00 (매주 일요일 휴무)

메뉴: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요거트스무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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